詩音律庭園 139

기차역에서 / 곽경애

기차역에서 / 곽경애 천국행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날마다 기차역에 서 있는 꿈을 꿉니다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빨래를 개어 서랍장에 넣다가 문득 기차역 플랫폼에 서서 열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소녀처럼 부푼 모습을 상상합니다 설레임의 기차도 지나가고 그리움의 마지막 열차도 지나갔지만 끝내 타지 못한 아쉬움으로 떠나는 기차의 뒷모습만 바라보다 꿈을 깨는 그런 날들이 많아집니다 불현듯이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나설 준비 다 된 것처럼 작은 가방 하나 마음 속 서랍장에 넣어두고 가보고 싶은 사랑역 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대를 생각하며 오늘도 기차역 플랫폼에 나가 그리움의 열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립니다 이 시를 꽤 오래 전에 읽고 보관해왔지만 이 시를 쓰신 분에 대해 메모해두질 않아 곽경애라는 분이 어떤 분인..

詩音律庭園 2019.04.06

사랑의 물리학 / 김인육

사랑의 물리학 / 김인육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김인육 시인은 1963년 울산 출생 경남대 국어교육학과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 석사 양천고등학교 국어 교사 재직중 2000년 으로 등단 시집 , , 2001년 교단 문예상 수상 2018년 제11회 미네르바문학상 수상 Spring In Athens / Nikos Ignatiadis

詩音律庭園 2019.03.30

수선화에게 / 정호승

수선화에게 / 정호승울지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정호승 시인경남 하동 출생초등학교 1학년 때 대구로 이사 성장기를 보냈다중학교 1학년(62년) 때 은행에 다니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여 도시 변두리에서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해야 했고전국고교문예 현상모집에서 “고교문예의 성찰”이라는 평론으로 당선되어 문예장학금을 지급하는 경희대학교 ..

詩音律庭園 2019.03.15

"응" / 문정희

"응" / 문정희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 전남 보성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대학원 졸업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문학 박사 1969년 《월간문학》신인상 당선 등단 현대문학상 수상 시집《문정희 시집》《새떼》《찔레》《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네》 수필집 《지상에 머무는 동안》 *** images *** 위 : 사랑 피어나다 / 서양화가 성하림 (2015년 작품) 아래 : In Bed, The Kiss / Henri de Toulouse-Lautre..

詩音律庭園 2019.03.14

들꽃 여관에 가고 싶다 / 박완호

들꽃 여관에 가고 싶다 / 박완호 들꽃 여관에 가 묵고 싶다 언젠가 너와 함께 들른 적 있는 바람의 입술을 가진 사내와 붉은 꽃의 혀를 지닌 여자가 말 한 마디 없이도 서로의 속을 읽어 내던 그 방이 아직 있을지 몰라 달빛이 문을 두드리는 창가에 앉아 너는 시집의 책장을 넘기리 三月의 은행잎 같은 손으로 내 中心을 만지리 그 곁에서 나는 너의 숨결 위에 달콤하게 바람의 음표를 얹으리 거기서 두 영혼의 안팎을 넘나드는 언어의 향연을 펼치면 네가 넘기는 책갈피 사이에서 작고 하얀 나비들이 날아오르면 그들의 날개에 시를 새겨 하늘로 날려보내리 아침에 눈뜨면 그대 보이지 않아도 결코 서럽지 않으리 소멸의 하루를 위하여 천천히 신발의 끈을 매고 처음부터 아무 것도 아니었던 나의 전부를 남겨 두고 떠나온 그 방 나..

詩音律庭園 2019.03.13

그대가 있어 더 좋은 하루 / 윤보영

그대가 있어 더 좋은 하루 / 윤보영 그대를 잠깐 만났는데도 나뭇잎 띄워 보낸 시냇물처럼 이렇게 긴 여운이 남을 줄 몰랐습니다 보고 있는데도 보고 싶어 자꾸 바라보다 그대 눈에 빠져 나올 수 없었고 곁에 있는데도 생각이 나 내 안에 그대 모습 그리기에 바빴습니다 그대를 만나는 것이 이렇게 좋을 줄 알았으면 오래 전에 만났을 걸 아쉽기도 하지만 이제라도 만난 것은 사랑에 눈뜨게 한 아름다운 배려겠지요 걷고 있는데도 자꾸 걷고 싶고 뛰고 있는데도 느리다고 생각될 때처럼 내 공간 구석구석에 그대 모습 그려 놓고 마술 걸린 사람처럼 가볍게 돌아왔습니다 그대 만난 오늘은 영원히 깨기 싫은 꿈을 꾸듯 아름다운 감정으로 수놓은 하루

詩音律庭園 2019.03.13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 2 / 용혜원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2 / 용혜원 그대의 눈빛 익히며 만남이 익숙해져 이제는 서로가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좋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쓸쓸하고, 외롭고, 차가운 이 거리에서 나, 그대만 있으면 언제나 외롭지 않습니다 그대와 함께 있으면 내 마음에 젖어드는 그대의 향기가 향기로와 내 마음이 따뜻합니다 그대 내 가슴에만 안겨줄 것을 믿고 나도 그대 가슴에만 머물고 싶습니다 그대는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 우리 한가롭게 만나 평화롭게 있으면 모든 시름과 걱정이 사라집니다 우리 사랑의 배를 탔으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습니다 그대는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입니다

詩音律庭園 2019.03.06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 / 용혜원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 / 용혜원 그대를 만나던 날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착한 눈빛 , 해맑은 웃음 한마디 , 한마디의 말에도 따뜻한 배려가 담겨 있어 잠시 동안 함께 있었는데 오래 사귄 친구처럼 마음이 편안 했습니다 내가 하는 말들을 웃는 얼굴로 잘 들어주고 어떤 격식이나 체면 차림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솔직하고 담백함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대가 내 마음을 읽어주는 것 같아 둥지를 잃은 새가 새 보금자리를 찾는 것만 같았습니다 짧은 만남이지만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오랜만에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미꽃 한 다발을 받은 것보다 더 행복했습니다 그대는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더 좋은 사람입니다

詩音律庭園 2019.03.06

사랑에 관한 짧은 편지 / 김상미​

사랑에 관한 짧은 편지 / 김상미몇 달, 아니 몇 해가 흘렀네요 당신을 만나고도 한참을 더 살았네요 느릿느릿, 아니 숨 가쁘게 헉헉 자기네들끼리 모여 소풍 다니는 흰 구름 떼처럼 산 넘고 바다 건너 초원을 가로질러 왔네요 진짜 삶은 그런 게 아니라고 생일 케이크 위의 촛불은 활활, 커다랗게 한숨 쉬고 있지만 배고픔과는 다른 내 삶을 어떻게 하겠어요 동이 틀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낙타 발굼치에 묻은 모래방울로도 집을 짓는 당신 첫눈에 나는 반했는걸요 무너지고 무너지면서도 당신에게로 가는 새장처럼 조그마해진 나의 집 아직도 나는 그 집에서 살아요 당신 때문에 엉망이 된 내 별자리 위에서 밥도 짓고 기도도 드려요 뜨거운 햇살 아래선 밀짚모자를 쓰고 도저히 답습할 수 없는 세계는 눈 딱 감고 건너뛰어 다녀요 ..

詩音律庭園 2019.03.03

한 사람을 사랑했네 2 / 이정하

한 사람을 사랑했네 2 / 이정하 한번 떠난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네 강물이 흐르고 있지만 내 발목을 적시던 그때의 물이 아니듯, 바람이 줄곧 불고 있지만 내 옷깃을 스치던 그때의 바람이 아니듯 한번 떠난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네 네가 내 앞에 서 있지만 그때의 너는 이미 아니다 내 가슴을 적시던 너는 없다 네가 보는 나도 그때의 내가 아니다 그때의 너와 난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한번 떠난 것은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아아,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그 부질없음이여

詩音律庭園 2019.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