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雨좋은시 37

가을비 / 정세훈

가을비 / 정세훈 어찌하다가 절실하게 뜨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냉철하게 차갑지도 않게 되었니 사십 줄 나이 나에게 물으며 가을비가 지나간다 어찌하다가 줄기차지도 않고 그렇다고 세차지도 않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나를 적시고 간다 1955년 충남 홍성 출생 시집 『손 하나로 아름다운 당신』 『맑은 하늘을 보면』 『저 별을 버리지 말아야지』 『끝내 술잔을 비우지 못하였습니다』 『그 옛날 별들이 생각났다』 『나는 죽어 저 하늘에 뿌려지지 말아라』 『부평 4공단 여공』 『몸의 중심』 『동면』 포엠 에세이집 『소나기를 머금은 풀꽃 향기』 시화집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 장편동화집 『세상 밖으로 나온 꼬마송사리 큰눈이』 동시집 『살고 싶은 우리 집』 『공단 마을 아이들』

비雨좋은시 2022.09.05

바하의 비 / 최가림

바하의 비 / 최가림 비오는 날에는 아무래도 바하의 미뉴엣이 제일이다 촘촘히 그려진 음표 중에 하나라도 놓치면 나의 연주는 망친다 한평생 연습만 하다 끝나버릴지도 모르는 난해하기만 한 생의 음표들, 몸과 마음을 다 던져 연습한 한 곡조차 능숙하지 못한 손놀림, 마음에서는 검은 구름이 스믈스믈 올라온다 도도도 레레레 미미미 ... 더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악보들은 점점 흘러내려 흔적도 없이 흐믈흐믈 사라져 버린다 비는 박자도 맞지 않는 리듬을 창문에 대고 두들겨 댄다 불협화음만 가득한 이 연주, 몇 시간이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바하의 미뉴엣은 오늘도 미완성이다 최가림 시인 숙명여대 음악대학 졸업 숙명여대 음악치료대학원 수료 중앙대 대학원 문창과 전문가 과정 2003년 [월간문학21] 신인상, 2005년..

비雨좋은시 2022.08.31

봄비, 간이역에 서는 기차처럼 / 고미경

봄비, 간이역에 서는 기차처럼 / 고미경 간이역에 와 닿는 기차처럼 봄비가 오네 목을 빼고 오래도록 기다렸던 야윈 나무가 끝내는 눈시울 뜨거워져 몸마다 붉은 꽃망울 웅얼웅얼 터지네 나무의 몸과 봄비의 몸은 한나절이 지나도록 깊은 포옹을 풀지 못하네 어린 순들의 연초록 발바닥까지 스며드는 따스함으로 그렇게 천천히, 세상은 부드러워져갔네 숨가쁘게 달려만 가는 이들은 이런 사랑을 알지 못하리 가슴 안쪽에 간이역 하나 세우지 못한 사람은 그 누군가의 봄비가 되지 못하리 고미경 시인 1964년 충남 보령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학과 1996년 으로 등단 현재 〈시비〉 동인 웹진 이 선정하는 에 고미경 시인의 詩는 이 선정 되었고 에 고미경 시인의 詩는 가 선정되었습니다 시집으로 이 있고 이 詩 은 에 수록되..

비雨좋은시 2020.03.09

봄비 / 고정희

봄비 / 고정희 가슴 밑으로 흘려보낸 눈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이뻐라 순하고 따스한 황토 벌판에 봄비 내리는 모습은 이뻐라 언 강물 풀리는 소리를 내며 버드나무 가지에 물안개를 만들고 보리밭 잎사귀에 입맞춤하면서 산천초목 호명하는 봄비는 이뻐라 거친 마음 적시는 봄비는 이뻐라 실개천 부풀리는 봄비는 이뻐라 오, 그리운 이여 저 비 그치고 보름달 떠오르면 우리들 가슴속의 수문을 열자 봄비 찰랑대는 수문을 쏴 열고 꿈꾸는 들판으로 달려나가자 들에서 얼싸안고 아득히 흘러가자 그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리 다만 둥그런 수평선 위에서 일월성신 숨결 같은 빛으로 떠오르자

비雨좋은시 2020.02.24

겨울비 내리던 날 / 용혜원

겨울비 내리던 날 / 용혜원 우산 속에서 우리는 때 아닌 겨울비로 정겹다 어둠이 내린 겨울밤에 쏟아지는 비는 검은 색이다 한없이 걷고만 싶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행복하다 비 내리는 겨울밤 그대만 곁에 있으면 내 마음은 분홍빛이다 그대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다 보면 우리의 사랑도 내리는 겨울비에 촉촉이 젖어든다

비雨좋은시 2020.01.06

비가 전하는 말 / 이해인

비가 전하는 말 / 이해인 밤새 길을 찾는 꿈을 꾸다가 빗소리에 잠이 깨었네 물길 사이로 트이는 아침 어디서 한 마리 새가 날아와 나를 부르네 만남보다 이별을 먼저 배워 나보다 더 자유로운 새는 작은 욕심도 줄이라고 정든 땅을 떠나 힘차게 날아오르라고 나를 향해 곱게 눈을 흘기네 아침을 가르는 하얀 빗줄기도 내 가슴에 빗금을 그으며 전하는 말 진정 아름다운 삶이란 떨어져 내리는 아픔을 끝까지 견뎌내는 겸손이라고 오늘은 나도 이야기하려네 함께 사는 삶이란 힘들어도 서로의 다름을 견디면서 서로를 적셔주는 기쁨이라고

비雨좋은시 2019.09.27

비 오는 날엔 / 정태현

비 오는 날엔 / 정태현 비 오는 날엔 뭉쿨 뭉쿨 비구름 같은 누군가의 그리움으로 피어나서 후두두둑 빗줄기 같이 누군가의 창문을 두드리고 싶다 비 오는 날엔 똑 똑 똑 낙숫물같이 누군가의 영혼을 파고들어 초롱초롱 별빛과 같은 누군가의 눈 속에 각인이고 싶다 비 오는 날엔 졸 졸 졸 시냇물같이 누군가의 가슴에 흘러들어 찰랑찰랑 바다와 같은 누군가의 품 안에 영원히 머물고 싶다 정태현 시인(목사) 전남 함평 백석대 기독신학, 백석대 신학대학원 연구원 아신대 대학원 2007년 "기독교 문예"에『영광의 노래외3편』으로 등단 시집 저서(종교서) 기독교 작가협회 회원 대한 예수교 장로회 목사 신의 나라 발행인

비雨좋은시 2019.09.21

비 내리는 날은 잠들지 못한다 / 김용화

비 내리는 날은 잠들지 못한다 / 김용화 비 내리는 날은 나무도 잠들지 못한다 잠들지 못하는 것이 어디 나무 뿐이랴 저 숲 어디 쯤 젖은 둥지엔 새들이 떨고 있을 터이고 저 들판 어디 쯤 젖은 풀잎엔 날개 접은 잠자리 힘겨울게다 비 내리는 날 잠들지 못하는 것은 모두가 깨어 있다 짙은 어둠, 빗줄기 굵어 질수록 잠들 수가 없다 비 내리는 날은 쉽게 잠들지 못한다 김용화 시인 충남 예산 1993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아버지는 힘이 세다』『감꽃 피는 마을』 『첫눈 내리는 날에 쓰는 편지』『비 내리는 소래포구에서』 『루를 위한 세레나데』『먼 길』 시선집 『감꽃 지는 마을』 시와시학상 동인상 수상 *** 편집 : 윤슬 성두석 ***

비雨좋은시 2019.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