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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지 28,29,30 / 이해인

가을 편지 28,29,30 / 이해인 28. 가을이 저물까 두렵습니다 가을에 온 당신이 나를 떠날까 두렵습니다 가을엔 아픔도 아름다운 것. 근심으로 얼굴이 핼쓱해져도 당신 앞엔 늘 행복합니다 걸을 수 있는데도 업혀가길 원했던 나 아이처럼 철없는 나의 행동을 오히려 어여삐 여기시던 당신 한 켤레의 고독을 신고 정갈한 마음으로 들길을 걷게 하여 주십시요 29. 잃은 단어 하나를 찾아 헤매다 병이 나 버리는 나의 마음을 창밖의 귀뚜라미는 알아줍니다 사람들이 싫어서는 아닌데도 조그만 벌레 한 마리에서 더 큰 위로를 받을 때도 있음을 당신은 아십니다 30. 여기 제가 왔습니다 언제나 사랑의 園丁(원정)인 당신 당신이 익히신 저 눈부신 열매들을 어서 먹게 해 주십시오 가을 하늘처럼 높고 깊은 당신 사랑의 秘法(비법..

詩音律庭園 2022.09.30

가을 편지 25,26,27 / 이해인

가을 편지 25,26,27 / 이해인 25. 당신과의 거리를 다시 확인하는 아침 미사에서 나팔꽃으로 피워 올리는 나의 기도 「나의 사랑이 티 없이 단순하게 하십시요 풀숲에 앉은 민들레 한 송이처럼 숨어 피게 하십시오」 26. 오늘은 모짜르트 곡을 들으며 잠들고 싶습니다 몰래 숨어들어 온 감기 기운 같은 영원에의 그리움을 휘감고 쓸쓸함조차 실컷 맛들이고 싶습니다 당신 아닌 그 누군가에게 기대를 걸었던 나의 어리석음도 뉘우치면서 당신 안에 평온히 쉬고 싶습니다 27. 엄마를 만났다 헤어질 때처럼 눈물이 핑 돌아도 서운하지 않은 가을날 살아 있음이 더욱 고맙고 슬픈 일이 생겨도 그저 은혜로운 가을날 홀로 떠나기 위해 홀로 사는 목숨 또한 아름다운 것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아래의 시를 읽어보면 이해인 시인의 나팔..

詩音律庭園 2022.09.29

가을 편지 22,23,24 / 이해인

가을 편지 22,23,24 / 이해인 22. 바다 위에 우뚝 솟은 섬은 변함이 없고 내 마음 위에 우뚝 솟은 사랑도 변함이 없습니다 사랑은 밝은 귀, 귀가 밝아서 내가 하는 말 죄다 엿듣고 있습니다 사랑은 밝은 눈, 눈이 밝아서 내 속마음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조리 읽어 냅니다 사람은 늙어가도 늙지 않는 사랑 세월은 떠나가도 갈 줄 모르는 사랑 나는 그를 절대로 숨길 수가 없습니다 23. 잊혀진 언어들이 어둠 속에 깨어나 손 흔들며 옵니다 국화빛 새 옷 입고 석류알 웃음 물고 가까이 옵니다 그들과 함께 나는 밤새 화려한 시를 쓰고 싶습니다 찔레 열매를 닮은 기쁨들이 가슴 속에 매달립니다 풀벌레가 쏟아버린 가을 울음도 오늘은 쓸쓸할 틈이 없습니다 24. 당신이 축복해 주신 목숨이 왜 이다지 배고픕니까 내게..

詩音律庭園 2022.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