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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지 19,20,21 / 이해인

가을 편지 19,20,21 / 이해인 19. 당신이 안 보이는 날 울지 않으려고 올려다 본 하늘 위에 착한 새 한 마리 날으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향한 그 無言의 높고 재빠른 그 나래짓처럼 20. 당신은 내 안에 깊은 우물 하나 파 놓으시고 물은 거저 주시지 않습니다 찾아야 주십니다 당신이 아니고는 채울 수 없는 갈증 당신은 마셔도 마셔도 끝이 없는 샘 돌아서면 즉시 목이 마른 샘 당신 앞엔 목마르지 않은 날 하루도 없습니다 21. 이 가을엔 안팎으로 많은 것을 떠나보냈습니다 원해서 가진 가난한 마음 후회롭지 않도록 나는 산새처럼 기도합니다 詩도 못 쓰고 나뭇잎만 주워도 풍요로운 가을날 초승달에서 차오르던 내 사랑의 보름달도 어느새 다시 그믐달이 되었습니다 아래 세 점의 그림은 조선시대 혜원 신윤복의 작품..

詩音律庭園 2022.09.28

가을 편지 16,17,18 / 이해인

가을 편지 16,17,18 / 이해인 16. 당신은 늘 나를 용서하는 어진 바다입니다 내 모든 죄를 파도로 밀어내며 온몸으로 나를 부르는 바다 나도 당신처럼 넓혀 주십시오 나의 모든 삶이 당신에게 업혀가게 하십시오 17. 당신은 늘 나를 무릎에 앉히는 너그러운 산 내 모든 잘못을 사랑으로 덮으며 오늘도 나를 위해 낮게 내려앉는 산 나를 당신께 드립니다 나도 당신처럼 높여 주십시오 18. 당신은 내 生에 그어진 가장 정직한 하나의 線 그리고 내 生에 찍혀진 가장 완벽한 한 개의 點 오직 당신을 위하여 살게 하십시오

詩音律庭園 2022.09.28

가을 편지 13,14,15 / 이해인

가을 편지 13,14,15 / 이해인 13. 바람이 붑니다 당신을 기억하는 내 고뇌의 분량만큼 보이지 않게 보이지 않게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14. 숲 속에 앉아 해를 받고 떨어지는 나뭇잎들의 기도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한 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들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이승에 뿌리내린 삶의 나무에서 지는 잎처럼 하나씩 사람들이 떨어져 나갈 때 아무도 그의 혼이 태우는 마지막 기도를 들을 수 없어 안타까워해 본 적이 있습니까? 지는 잎처럼 그의 삶이 또한 잊혀져 갈 것을 '당연한 슬픔'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해 본 적이 있습니까? 15. 은행잎이 지고 있어요. 노란 꽃비처럼, 나비처럼 춤을 추는 무도회 이 순간을 마지막인 듯이 당신을 사랑한 나의 언어처럼 쏟아지는 빗소리 마지막..

詩音律庭園 2022.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