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짧은 편지 / 김상미
몇 달, 아니 몇 해가 흘렀네요
당신을 만나고도 한참을 더 살았네요
느릿느릿, 아니 숨 가쁘게 헉헉
자기네들끼리 모여 소풍 다니는 흰 구름 떼처럼
산 넘고 바다 건너 초원을 가로질러 왔네요
진짜 삶은 그런 게 아니라고
생일 케이크 위의 촛불은 활활, 커다랗게 한숨 쉬고 있지만
배고픔과는 다른 내 삶을 어떻게 하겠어요
동이 틀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낙타 발굼치에 묻은 모래방울로도
집을 짓는 당신
첫눈에 나는 반했는걸요
무너지고 무너지면서도 당신에게로 가는
새장처럼 조그마해진 나의 집
아직도 나는 그 집에서 살아요
당신 때문에 엉망이 된 내 별자리 위에서
밥도 짓고 기도도 드려요
뜨거운 햇살 아래선 밀짚모자를 쓰고
도저히 답습할 수 없는 세계는
눈 딱 감고 건너뛰어 다녀요
우리, 조금만 더 살아요
활짝 피어나 웃는 제비꽃처럼
당신을 기다릴래요
날마다 내 마음 소매치기해 가고선
다시는 되돌려주지 않는 당신
10년 전에도 그랬고 20년 전에도 그랬지요
*장미 향기는 장미를 던진 손에
더 오래 남는 법이라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