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音律庭園 139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이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라질 때까지 어두운 들과 산굽이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달력 속에서 뚝, 뚝 꽃잎 떨어지는 날이면 바람은 너의 숨결을 몰고 와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웠다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오르고 무심..

詩音律庭園 2008.01.14

그리운 이름 하나 / 김숙경

그리운 이름 하나 / 김숙경 그래, 내게도 그리운 이름 하나 있지 함께 있어도 늘 그리운 그 시린 이름 사랑이 이젠 서글픔으로 차올라 울꺽 눈물이 날 때도 나는 그 이름 떠올린다 낯설지 않으나 늘 그 자리에 있고 늘 그 자리를 비워도 낯설지 않은 쟈스민 향기로 퍼져가는 그 이름 하나 그래, 내게도 향기로운 이름 하나 있지 곁에 있어도 만져보고 싶은 이름 사랑이 기쁨으로 차올라 황홀할 때에 나는 자꾸만 그 이름을 애써 부르고 있다 그리운 그 이름 하나

詩音律庭園 2008.01.13

그대에게 가고 싶다 / 안도현

그대에게 가고 싶다 / 안도현 해 뜨는 아침에는 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밤새 퍼부어대던 눈발이 그치고 오늘은 하늘도 맨 처음인 듯 열리는 날 나도 금방 헹구어낸 햇살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창가에 오랜만에 볕이 들거든 긴 밤 어둠 속에서 캄캄하게 띄워 보낸 내 그리움으로 여겨다오 사랑에 빠진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그리움 하나로 무장무장 가슴이 타는 사람 아니냐 진정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 새날이 밝아오고 진정 내가 그대 가까이 다가서는 만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 되어 우리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봄이 올 때 까지는 저 들에 쌓인 눈이 우리를 덮어줄 따스한 이불이라는 것도 나는 잊지..

詩音律庭園 2008.01.12

나도 그런 날 있다 / 유현주

나도 그런 날 있다 / 유현주 웃는다고 해서 늘 마른 웃음은 아니다 분홍 옷을 입었다고 가슴이 밝은 것도 아니고 노래를 한다고 해서 즐거워서가 아닌 때 많다 누구나처럼 나도 그런 날 있다 먼지같이 가벼워 남몰래 물을 뿌리고 푸른 가슴 보일까 화려한 옷 한 겹 더 싸매고 주저앉아 울고 싶을수록 큰 소리로 노래하는 것은 바다로 가는 것이 강의 꿈인 까닭 오늘도 나는 그런 날 위에 엎어져 마음을 쓰다듬는다

詩音律庭園 2008.01.11

나도 그리울 때가 있다 / 정미숙

나도 그리울 때가 있다 / 정미숙 살다 보면 그런 날 있지 않은가 문득 떠나고 싶고 문득 만나고 싶은 가슴에 피어오르는 사연 하나 숨 죽여 누르며 태연한 척 그렇게 침묵하던 날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고독이 밀려와 사람의 향기가 몹시 그리운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차 한 잔 나누며 외로운 가슴을 채워 줄 향기 가득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바람이 대지를 흔들어 깨우고 나뭇가지에 살포시 입맞춤하는 그 계절에 몹시도 그리운 그 사람을 만나고 싶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살다 보면 가끔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詩音律庭園 2008.01.06

내 사람이여 / 백창우

내 사람이여 / 백창우 내가 너의 어둠을 밝혀줄 수 있다면 빛 하나 가진 작은 별이 되어도 좋겠네 너 가는 곳마다 함께 다니며 너의 길을 비추겠네 내가 너의 아픔을 만져줄 수 있다면 이름 없는 들의 꽃이 되어도 좋겠네 눈물이 고인 너의 눈 속에 슬픈 춤으로 흔들리겠네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내 가난한 살과 영혼을 모두 주고 싶네 내가 너의 기쁨이 될 수 있다면 노래 고운 한 마리 새가 되어도 좋겠네 너의 새벽을 날아다니며 내 가진 시를 들려주겠네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이토록 더운 사랑 하나로 네 가슴에 묻히고 싶네 그럴 수 있다면 아아 그럴 수 있다면 네 삶의 끝자리를 지키고 싶네 내 사람이여 내 사람이여 너무 멀리 서 있는 내 사람이여 이대로 잠들고 싶다 내내 소처럼 꿈만 꾸다가 고..

詩音律庭園 2008.01.04

새해 아침에 / 이해인

새해 아침에 / 이해인 창문을 열고 밤새 내린 흰 눈을 바라 볼 때의 그 순결한 설레임으로 사랑아 새해 아침에도 나는 제일 먼저 네가 보고 싶다 늘 함께 있으면서도 새로이 샘솟는 그리움으로 네가 보고 싶다 새해에도 너와 함께 긴 여행을 떠나고 가장 정직한 시를 쓰고 가장 뜨거운 기도를 바치겠다 내가 어둠이어도 빛으로 오는 사랑아 말은 필요 없어 내 손목을 잡고 가는 눈부신 사랑아 겨울에도 돋아나는 내 가슴 속 푸른 잔디 위에 노란 민들레 한 송이로 네가 앉아 웃고 있다 날마다 나의 깊은 잠을 꿈으로 깨우는 아름다운 사랑아 세상에 너 없이는 희망도 없다 새해도 없다 내 영혼 나비처럼 네 안에서 접힐 때 나의 새해는 비로소 색동의 설빔을 차려 입는다 내 묵은 날들의 슬픔도 새 연두저고리에 자줏빛 끝동을 단다..

詩音律庭園 2008.01.03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 정희성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 정희성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詩音律庭園 2008.01.02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류시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류시화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詩音律庭園 2008.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