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音律庭園

노을 / 기형도

음악듣는남자 2019. 11. 20. 20:15




노을 / 기형도 
하루 종일 지친 몸으로만 떠돌다가
땅에 떨어져 죽지 못한
햇빛들은 줄지어 어디로 가는 걸까
웅성웅성 가장 근심스런 색깔로 서행하며
이미 어둠이 깔리는 소각장으로 몰려들어
몇 점 폐휴지로 타들어가는 오후 6시의 참혹한 형량
단 한 번 후회도 용서하지 않는 무서운 시간
바람은 긴 채찍을 휘둘러
살아서 빛나는 온갖 상징들을 몰아내고 있다
도시는 곧 활자들이 일제히 빠져 달아나
속도 없이 페이지를 펄럭이는 텅 빈 한 권 책이 되리라
승부를 알 수 없는 하루와의 싸움에서
우리는 패배했을까, 오늘도 물어보는 사소한 물음은
그러나 우리의 일생을 텅텅 흔드는 것
오후 6시의 소각장 위로 말없이
검은 연기가 우산처럼 펼쳐지고
이젠 우리들의 차례였다
두렵지 않은가
밤이면 그림자를 빼앗겨 누구나 아득한 혼자였다.
문득 거리를 빠르게 스쳐가는 일상의 공포
보여다오,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가 살아 있는 그대여
오후 6시
우리들 이마에도 아, 붉은 노을이 떴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가지?
아직도 펄펄 살아 있는 우리는 이제 각자 어디로 가지?






기형도 시인

1960년 경기도 옹진군 연평리 출생 부친의 고향은 황해도였으나 한국전쟁 중 연평도로 건너왔다 1964년 일가족이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로 이사 당시 소하리는 급속한 산업화에 밀린 철거민과 수재민들의 정착지로 도시 근교 농업이 성한 농촌이었다 성실한 부친 덕분에 집안은 유복한 편이었다 1969년 부친이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모친이 생계를 꾸리게 되었다 1973년 신림중학교에 입학했고 1975년 바로 위의 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76년 중앙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교내 중창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신춘무예 시상식 후 찍은 가족사진(1985년)
1979년 연세대 정법대 정법계열에 입학 교내 문학 서클 〈연세문학회〉에 입회하여 본격적인 문학 수업 시작 교내 신문인 『연세춘추』에서 제정·시상하는 〈박영준문학상〉에 <영하의 바람> 가작 입선 1980년 정법계열에서 정치외교학과로 진학 ‘80년의 봄’을 맞아 철야농성과 교내 시위에 가담하고 교내지에 「노마네 마을의 개」를 기고했다가 조사를 받았다 1981년 방위로 소집되어 안양 인근 부대에서 근무했다 안양의 문학 동인인 〈수리〉에 참여해서 동인지에 「사강리」등 발표 시작에 몰두하여 초기작의 대부분을 이 때 쓰고 습작을 정리했다
기형도 문학관
1982년 전역하여 양돈 등 집안일을 도우면서 창작과 독서에 몰두했다 이 때 「겨울 판화」, 「포도밭 묘지」, 「폭풍의언덕」등 다수의 시와 소설을 썼다. 1983년 3학년으로 복학하고 교내 신문인 『연세춘추』에서 제정·시상하는 〈윤동주문학상〉에 시 「식목제」로 당선되었다 1984년중앙일보사에 입사하고 1985년 시 「안개」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2월에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 신문사 근무 1989년 3월 7일 서울 종로의 심야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만 29세, 뇌졸중이었다 1989년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1990년 유고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 추모 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전집 『기형도 전집』 *** 편집 : 윤슬 성두석(출처 : daum백과 한국민족문학 대백과사전)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