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커피 / 임찬일
헤어진 사람하고도 그때 좋았을 당시에는
가슴에 프림처럼 감미로운 이야기를 풀어 저으며
따뜻한 눈빛 아래 한 잔의 커피가 있었다
추억은 이제 벽에 걸린 찻잔 모양 물기가 마르고
오이씨처럼 풋풋한 눈물로 슬픔도 푸르게 자라던 그 시절을
혼자 빠져 나와 또 한 잔의 커피 앞에 앉는다
갔다, 내가 붙들지 못한 사랑의 발목
냉커피처럼 내 가슴을 식혀 놓고 흘러간 그 사람
우리 사이에 남은 쓴맛을 낮추기 위해 나는
처음으로 설탕을 듬뿍 떠 넣는다
이제 그의 이름만 떠올려도 옛 시간은 블랙커피처럼 쓰다
오래 전 턱을 괴고 앉아 그를 기다릴 때 나는
무슨 느낌으로 커피에게 내 입을 빼앗겼을까
돌려받을 수 없는 시간을 그 사람은 갖고 떠났다
그와 나눈 한 잔의 커피가 이 세상의 가장 진한 이야기가 되어
지금 내 가슴을 휘휘 저어대고 있다
함부로 커피를 마실 일이 아니다 보낼 사람이라면
갈색 이마와 그윽한 눈빛을 한 잔씩 마시면서
사랑이 얼마나 슬픈 약속인가를 그때는 왜 몰랐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를 뜨겁게 물들이던 슬픈 커피 앞에서
나는 그 사람이 비운 자리를 혼자 지키고 있다
아마도 그를 잊지 못하는 모양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