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자작시

가장 사랑스럽다던 발자국 / 윤슬성두석

음악듣는남자 2010. 9. 28. 22:27
 
가장 사랑스럽다던 발자국 / 윤슬성두석 (2006. 2. 23) 네가 예전처럼 우습다고 배꼽 잡을 꿈을 하얀 대낮에 꿀 수 있는 건 아마도 아직도 일요일이기 때문이겠지만 난 씻지도 먹지도 않고 하루 종일 방에만 구들막처럼 엎드려 네가 좋아 했고 내가 아직도 좋아하는 Celtic Orchestra가 연주하는 Down By The Sally Garden을 들으며 너의 손길을 매만지고 꺼고는 너의 눈망울 생각하고 들으며 너의 미소를 떠올리고 꺼고는 너의 숨결에 젖어보고 그러다가 창고로 가 보았지 언젠가 칠하다 남은 페인트통과 붓도 챙겨 들고 그날의 구두를 신었어 하늘은 맑고 햇살들이 눈을 부시게 하고 사람들은 마치 흔들리는 버드나무 같았어 여기서든 저기서든 네가 올만한 길목 은행나무에 기대어 이렇게 주저 않았어 사람들이 원숭이 구경하듯 쳐다보았지만 절절한 내 마음이 아랑곳 할 건 없었지 그리곤 구두 밑창 이쪽 끝에서 온통 저쪽 끄트러미까지 하얗게 칠을 하고는 마르기 전에 일어서서 뒤로 걸었어 뒤뚱거리고 휘청거리지만 내 발자국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에 뒤로 걸었어 사람들은 늘 그렇듯이 미친 놈 하나쯤은 잘도 참아 주고 잘도 피해 나가는 법이지 몸은 흔들리고 발걸음도 구불 하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닳기 전엔 그대로지 다만 희미해져 가면 나는 뒷걸음질 멈추고 또다시 주저앉아 칠을 하였어 하지만, 너는 아직도 어디로 가고 있기에 사람들이 다 피해 나가는, 새파란 하늘에 새하얀 구름보다 더 하얀 내 발자국을 따라 오지도 못하고 찾지도 못하고 있는가 파도가 하얀 입술로 키쓰하면서 몰려오는 그 바닷가 모래사장에 찍힌 나의 발자국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다고 했는데 너는 지금 어느 바닷가에 있기에 아직도 나의 하얀 발자국을 잊은 듯 하는가 높고 낮은 빌딩숲 사이로 해는 뉘엿하는데 페인트 통은 네가 떠난 가슴처럼 비워졌는데 하얀 발자국들은 그날의 파도처럼 입맞춤 하고 있는데, 너는 지금 어느 갯바위에서 노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눈으로만 섰는가 서부의 여주인공처럼 하얀 발자국마다 손끝으로 부비어 지나간 시간을 재다가 인디언 여자처럼 빛깔 잃은 발자국마다 코끝을 대면서 앉은걸음으로 올 것인가 나는 벌써 여기까지 뒷걸음질로 왔는데 너는 왜 아직도 내 눈을 마주 보며 걷고 있지 않는 것인가 나의 체취를 잊었는가 나 홀로 앉아서 밟혀진 발자국들을 본다 지금은 그 바다로 가보아야 할 시간일까 가장 사랑스럽다던 나의 발자국들 찍으러 밀물이 오기 전에 네가 찾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