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 이동원, 최양숙
(고은 시, 김민기 작곡)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보내 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메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메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아름다워요 아름다워요
가수 이동원은 <시로 노래하는 가수>로 불리우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그를 고풍스런 느낌의 <가인(歌人)>이라고 부릅니다
가수 이동원 하면 <향수>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서울 여의도 한 책방에서 시인 정지용의 <향수>를 읽고 한국어의 아름다움에 반해
작곡가 김희갑에게 곡을 의뢰하고 테너 박인수에게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요청한 열정과 이를 받아들인 박인수의 결단이 더해
1989년 그 유명한 크로스오버 곡 <향수>가 탄생합니다
<향수>는 열린음악회 프로그램이 생겨나는데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게 되며
<향수>와 열린음악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가곡이 일반인들에게 친숙해지는
가곡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는 데에 공헌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 글은 2008년 이동원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대표곡 '향수'는 어떻게 만들었나요?
“‘향수’를 읽고 필(feel)이 와서 김희갑 선생한테 부탁했어요
그런데 한 8개월 정도 걸렸죠
그 동안 이거 한 곡에 매달려 아무것도 못하셨으니까요
(김희갑 선생은 그의 청을 한마디로 거절했다고 한다
운을 살리기 힘들고 시도 길었기 때문이란다)
나(이동원) 생각해야지, 테너(박인수 당시 서울대 교수) 생각해야지
또 시는 길지. 그러니까 ‘야, 이걸 어떻게 만드나?’ 그랬던 것 같아요
-박인수 교수는 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나요?
“예. ‘내가 미국서 공부할 때 이동원씨의 '이별 노래'를 듣고
위로를 많이 받았다’ 그러더라고요. 그러면서 ‘곡만 잘 나오면 참 좋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곡 만들기 전부터 화제가 됐어요
그땐 대중가수가 성악가랑 같이 작업하는 것도 없었고
같은 무대에 선 적도 없었어요. 그리고 성악 하는 사람은 매우 귀족같았고
대중가요 하는 사람은 천민, ‘딴따라’ 취급을 받던 시기였어요
쇼킹한 거였죠. 그런 게 이젠 다 없어져 버린 거죠
‘향수’ 때문에 열린음악회도 생겼고 클래식하고 대중가요랑 같은 무대에 서게 됐죠
사회적인 고정관념이 깨진 것이니 '향수'의 등장이 노래 자체보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거죠.”
1971년 이 곡을 처음 부른 가수 최양숙은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하였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샹송가수라 일컬어집니다
1960년대에 <황혼의 엘레지>로 인기를 얻었으나
뮤지컬을 하겠다며 뉴욕으로 갔다가 1년 반 만에 돌아온
그녀가 나훈아와 남진이 양분하고 있던 트로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시인 고은과 같이 기독교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던
최양숙의 오빠 최경식(음악평론가, 라디오 피디겸 진행자)이
어느 술자리에서 고은에게 동생을 위한 시를 부탁하였고
고은은 즉석에서 <가을 편지>를 써주게 되고
이 시에 최경식이 김민기에게 작곡을 부탁하여 이 노래가 탄생합니다
하지만, 김민기가 작곡한 곡이라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빛을 못보다가, 1984년 이동원이 2집 앨범에 담아 부르면서
라디오 전파를 타게 된 이후, 양희은, 패티김, 강인원, 조관우 등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다시 불려지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을 애창곡 애청곡의 하나가 됩니다
*** 편집 : 윤슬 성두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