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대 3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 박정대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 박정대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창밖에는 밤새도록 눈이 내려 그 하얀 돛배를 타고 밤의 아주 먼 곳으로 나아가면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 닿곤 했지 산뚱반도가 보이는 그곳에서 너와 나는 한 잎의 불멸 두 잎의 불면 세 잎의 사랑과 네 잎의 입맞춤으로 살았지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의 스산한 벌판에선 밤새 겨울밤이 말 달리는 소리, 위구르, 위구르 들려오는데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내 작은 나라의 봉창을 열면 그때까지도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려 있는 몇 방울의 음악들 아직 아침은 멀고 대낮과 저녁은 더욱더 먼데 누군가 파뿌리 같은 눈발을 사락사락 썰며 조용히 쌀을 씻어 안치는 새벽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詩音律庭園 2018.12.06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하네 / 박정대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하네 / 박정대 나 집시처럼 떠돌다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 길을 걸어왔는지 바람이 깎아놓은 먼지조각처럼 길 위에 망연히 서 있었네 내 가슴은 푸른 샘물 한 줌으로 그대 메마른 입술 축여 주고 싶었지만 아, 나는 집시처럼 떠돌다 어느 먼 옛날 가슴을 잃어버렸다네 가슴 속 푸른 샘물도 내 눈물의 길을 따라 바다로 가버렸다네 나는 이제 너무 낡은 기타 하나만을 가졌네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한다네 쏟아지는 햇살 아래서 기타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면 가웅, 가웅, 나의 기타는 추억의 고양이 소리를 낸다네 떨리는 그 소리의 가여운 밀물로 그대 몸의 먼지를 날려버릴 수만 있다면 이 먼지 나는 길 위에서 그대는 한 잎의 푸른 음악으로 다시 돋아날 수도 있으련만 나 ..

詩音律庭園 2018.12.02

네 영혼의 중앙역 / 박정대

네 영혼의 중앙역 / 박정대 키냐르, 키냐르 부르지 않아도 은밀한 생은 온다 음악처럼, 문지방처럼, 저녁처럼 네 젖가슴을 흔들고 목덜미를 스치며 네 손금의 장강 삼협을 지나 네 영혼의 울타리를 넘어, 침묵의 가장자리 그 딱딱한 빛깔의 시간을 지나 욕망의 가장 선연한 레일 위를 미끄러지며 네 육체의 중앙역으로 은밀한 생은 온다 저녁마다 너를 만나던 이 지상의 물고기 자리에서 나는 왜 네 심장에 붙박이별이 되고 싶었는지 네 기억의 붉은 피톨마다 은빛 비늘의 지문을 남기고 싶었는지 내가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한 마리 외로운 몸짓으로 네 몸을 거슬러 오를 때도 내 영혼은 왜 또 다른 생으로의 망명을 꿈꾸고 있었던 것인지 생이 더 이상 생일 수 없는 곳에서, 생이 그토록 생이고만 싶어하는 곳에서 부르지 않아도 은..

詩音律庭園 2008.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