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雨좋은시

늙은 비의 노래 / 마종기

음악듣는남자 2019. 9. 6. 22:37




늙은 비의 노래 / 마종기
나이 들면 사는 게 쉬워지는 줄 알았는데 
찬비 내리는 낮은 하늘이 나를 적시고 
한기에 떠는 나뭇잎 되어 나를 흔드네  
여기가 희미한 지평의 어디쯤일까 
사선으로 내리는 비 사방의 시야를 막고 
헐벗고 젖은 속세에 말 두 마리 서서 
열리지 않는 입 맞춘 채 함께 잠들려 하네 
눈치 빠른 새들은 몇 시쯤 기절에서 깨어나 
시간이 지나버린 곳으로 날아갈 것인가 
내일도 모레도 없고 늙은 비의 어깨만 보이네 
세월이 화살 되어 지날 때 물었어야지 
빗속에 혼자 남은 내 절망이 힘들어할 때 
두꺼운 밤은 내 풋잠을 진정시켜 주었고 
나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편안해졌다 
나중에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안개가 된 늙은 비가 어깨 두드려주었지만 
아, 오늘 다시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하는 
빗속에 섞여 내리는 당신의 지극한 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