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雨좋은시

여우비 / 송기흥

음악듣는남자 2019. 8. 14. 23:47



 
여우비 / 송기흥
여우비 온다, 여우 같은 
그대 생각 환하게 밝히며 
빗방울 떨어진다 
마당 귀퉁이 얕은 물웅덩이에 
빗방울의 작은 발바닥들이 
둥글둥글 파문을 그린다 
사랑도 가슴 가장자리까지 
쉼 없는 생각을 밀며 번져나가는 
빗방울 같은 것, 잠시 잠깐의 
환한 통증이 무심결에 찾아오는 
이런 생애의 한 순간이여, 
누가 이토록 오래 내려놓은 
스위치를 올렸나, 확 불이 붙는 
점등의 순간, 모든 게 들통나버린 
오후의 알몸을 더듬는 손길이 보였다 
멧비둘기도 매미들도 차마
소리를 딱, 그친 염천 한 때 
여우비 환하게 내려 
내 그리움의 심연도 막 번져나간다 




 

송기흥 시인

1960년 전남 고흥 출생 2001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흰뺨검둥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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