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音律庭園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하네 / 박정대

음악듣는남자 2018. 12. 2. 17:27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하네 / 박정대
나 집시처럼 떠돌다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 길을 걸어왔는지 
바람이 깎아놓은 먼지조각처럼 
길 위에 망연히 서 있었네 
내 가슴은 푸른 샘물 한 줌으로 
그대 메마른 입술 축여 주고 싶었지만 
아, 나는 집시처럼 떠돌다
어느 먼 옛날 가슴을 잃어버렸다네 
가슴 속 푸른 샘물도 
내 눈물의 길을 따라 
바다로 가버렸다네  
나는 이제 너무 낡은 기타 하나만을 가졌네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한다네
쏟아지는 햇살 아래서 
기타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면 
가웅, 가웅, 나의 기타는 
추억의 고양이 소리를 낸다네 
떨리는 그 소리의 가여운 밀물로 
그대 몸의 먼지를  날려버릴 수만 있다면 
이 먼지 나는 길 위에서 
그대는 한 잎의 푸른 음악으로 
다시 돋아날 수도 있으련만  
나 집시처럼 떠돌다 이제서야 그대를 만났네 
그대는 어느 먼 길을 홀로 걸어 왔는지
지금 내 앞에서 망연히 서있네 
서러운 악보처럼 펄럭이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