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雨좋은시

비 / 홍수희

음악듣는남자 2018. 8. 29. 19:59
 
비 / 홍수희
눈을 감은 채 비가 내린다
말이 없는 채 비가 내린다
소리 없는 채 비가 내린다
당신의 어둠 그리고 나의 어둠
그 까마득한 혼돈의 끝자락에서
질서도 없이 대책도 없이
비인 찻잔 위에는
혼자서 덩그라니 나동그라진
그대와 그대의 서글픈 자유
고딕으로 멈춰버린 탁자 위에는
쇠빛으로 싸늘히 시들어 있는
당신과 당신의 버려진 인내
비 같은 머리카락, 머리카락 같은 비
손 뻗으면 닿을 듯한
아아, 그대의 하이얀 순결
아직,
너의 이름자조차 채 지워지지 않은
낙서 많은 유리창 저 너머에서
눈을 감은 채 비가 내린다
보이지 않는 듯 비가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