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버지의 첫사랑이었을 때 / 천수호 아버지는 다섯 딸 중나를 먼저 지우셨다 아버지께 나는 이름도 못 익힌 산열매 대충 보고 지나칠 때도 있었고아주 유심히 들여다 볼 때도 있었다 지나칠 때보다유심히 눌러볼 때 더 붉은 피가 났다 씨가 굵은 열매처럼 허연 고름을 불룩 터뜨리며아버지보다 내가 곱절 아팠다아버지의 실실한 미소는 행복해 보였지만아버지의 파란 동공 속에서 나는 파르르 떠는 첫 연인 내게 전에 없이 따뜻한 손 내밀며당신, 이제 당신 집으로 돌아가요, 라고 짧게 결별을 알릴 때 나는 가장 쓸쓸한 애인이 되어 내가 딸이었을 때의 미소를 버리고아버지 연인이었던 눈길로 아버지 마지막 손을 놓는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아버지 / 박강수아버지 / 김동아 Peter Pa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