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휘 2

첫사랑 / 심재휘

첫사랑 / 심재휘 장충동에 비가 온다 꽃잎들이 서둘러 지던 그 날 그녀와 함께 뛰어든 태극당 문 앞에서 비를 그으며 담배를 빼물었지만 예감처럼 자꾸만 성냥은 엇나가기만 하고 샴푸향기 잊혀지듯 그렇게 세월은 갔다 여름은 대체로 견딜 만하였는데 여름 위에 여름 또 여름 새로운 듯 새롭지 않게 여름 오면 급히 비를 피해 내 한 몸 겨우 가릴 때마다 비에 젖은 성냥갑만 늘었다 그래도 훨씬 많은 것은 비가 오지 않은 날들이었고 나뭇가지들은 가늘어지는 운명을 향해 걸어갔다 가늘어지기는 여름날 저녁의 비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후로 많은 저녁들이 나를 지나갔지만 발 아래 쌓인 세월은 귀갓길의 느린 걸음에도 낡은 간판처럼 가끔 벗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마른 꽃잎에게 묻는 안부처럼 들쳐보는 그 여름 저녁에는 여전히 버..

첫사랑♡詩 2020.04.02

다시 첫사랑에 관하여 / 심재휘

다시 첫사랑에 관하여 / 심재휘 절정에 올라 막 쏟아지려는 파도는 아직도 그대로입니다 저 멀리 눈 먼 등대 앞에서 나는 머리카락 흩날리며 내 앞의 당신을 오늘도 바라보고 있습니다 궁금한 것은 이 굳은 방에 나를 가두어놓고 그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나요? 지금도 한 눈을 감은 채 나를 찍고 있나요? 심재휘 시인 1963년 강릉 출생 고려대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국문학 박사 1997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 『그늘』 『중국인 맹인 안마사』 『용서를 배울 만한 시간』 시론집 『한국현대시와 시간』 수상 김종철 문학상(2019년 제1회) 현대시 동인상, 발견문학상 대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

첫사랑♡詩 2020.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