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흔적 / 조재영 언제부턴가 그는 긴 시를 쓰기 시작했네 페이지를 넘겨도 그의 시는 끝나지 않네 구두점을 넣으려다가 쉼표를 찍고 행을 비우네 고개를 드네 그 행간의 배면에 숨은 꽃을 나는 본 적이 있네 꽃잎 모두 떼어낸 꽃나무 줄기가 끝없이 늘어서서 후들거리는 것을 줄거리만 있는 쓸쓸한 소설을 그런 영화를 나는 본 적이 있네 긴 시를 긴 시를 그는 썼네 상심하지 않고 긴 시를 쓰고 있는 그의 밤은 끝나지지 않네 그의 어깨에 두른 반짝이는 푸른 시간의 외투를 그 구겨짐을 나는 본 적이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