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비 / 마종기 참 멀리도 나는 왔구나 산도 더 이상 따라오지 않고 강물도 흙이 되어 흐르지 않는다 구름은 사방에 풀어지고 가까운 저녁도 말라 어두워졌다 그대가 어디서고 걷고 있으리라는 희망만 내 감은 눈에 아득히 남을 뿐 폐허의 노래만 서성거리는 이 도시 이제 나는 안다 삶의 사이사이에 오래된 다리들 위태롭게 여린 목숨조차 편안해 보이고 그대 누운 모습의 온기만 내 안에 살아 있다 하늘은 올라가기만 해서 멀어지고 여백도 지워진 이 땅 위의 밤에 차고 외로운 잠꼬대인가 창밖에서 떠는 작은 새소리, 빗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