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의 비 / 최가림 비오는 날에는 아무래도 바하의 미뉴엣이 제일이다 촘촘히 그려진 음표 중에 하나라도 놓치면 나의 연주는 망친다 한평생 연습만 하다 끝나버릴지도 모르는 난해하기만 한 생의 음표들, 몸과 마음을 다 던져 연습한 한 곡조차 능숙하지 못한 손놀림, 마음에서는 검은 구름이 스믈스믈 올라온다 도도도 레레레 미미미 ... 더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악보들은 점점 흘러내려 흔적도 없이 흐믈흐믈 사라져 버린다 비는 박자도 맞지 않는 리듬을 창문에 대고 두들겨 댄다 불협화음만 가득한 이 연주, 몇 시간이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바하의 미뉴엣은 오늘도 미완성이다 최가림 시인 숙명여대 음악대학 졸업 숙명여대 음악치료대학원 수료 중앙대 대학원 문창과 전문가 과정 2003년 [월간문학21] 신인상, 200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