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첫사랑 / 김선우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2
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가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이 시가 주는 메시지를 표현해 보기 위하여
<그해 여름>의 이미지들을 사용했는데
이 이미지들이 갖고 있는 본래 [내용]은 잠시 잊고
이 이미지들이 주는 느낌만 이 시와 관련지어 봅니다
배경음악도
뒤죽박죽이거나 찌르거나 아리거나 촉촉하거나 칙칙하거나 어둡거나
원망 비장 비탄 한탄의 tune이 아니라, 이제는 정리정돈이 되어
새로 맞이할 해맑은 하늘과 순순한 햇살과 달콤한 공기를 쐬려고
막 창문을 열어젖히는 승화와 고양(高揚)의 첫 단계 느낌이 들기에
Betsy Foster의 She Will Rise Again을 택해 보았습니다
사람을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지만
사랑은 영원히 소유할 수 있을까요?
사랑에 있어서 영원? 소유? 아름다운 낱말들이라고 평소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원? 소유? 왠지 부담스러운 낱말들이라는 생각도 한편 듭니다
특히, [소유]라는 낱말은 무례하고 발칙하고 막무가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승화? 고양(高揚)? 이런 표현들을 제가 쓰긴 했지만, 좋은 낱말들이긴 하지만
왠지, 집요함? 미화? 부풀림? 군더더기? "함께 만들었던 그날들의 진담이 아니라
나 혼자 만들고 있는 후일담, 부록?"같은 불순한 작위가 내포되어있는 듯한
안 어울리는 느낌이 듭니다
마침내 비로소 [나도] 이별한다는 건
한 번 밖에 없는 그 순간들에 진심으로 사랑했으므로
이제는 그 이별이 주는 아픔의 몸부림을 가라앉히고
받아 들이기 힘들었던 그 이별의 이유들을 존중하고 그 이별이 주는 부재마저 화해하고 수용하여
아름다웠던 그 순간들을 오염 시키지 않고 기억 속에 "그때 그대로" 쟁여 놓는 것
그 추억으로의 평온한 여행을 이제 막 시작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네요
여전히 내가 그대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많듯이
그대도 나에게 다 하지 못한 말들이 아직도 많을 것이기에
어제 그대가 결행한 이별이 내가 살아가는 내 삶을 그대가 사랑하고 존중한 것이기에
오늘 내가 행하는 이별도 그대가 살아갈 그대의 삶을 내가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기에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있는, 나를 내가 보듬어 내고, 그 나를 내가 따뜻하게 안아주고
그리고 말합니다
5월의 푸른 햇살 가득 머금은 아카시아 이파리같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 이렇게 괜찮아요
그대 또한 그러하기를
*** 글쓴이 : 윤슬 성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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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시인, 에세이스트, 소설가
1970년 강릉 출생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1996년 《창작과비평》겨울호에 시〈대관령 옛길〉등 열 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
<시힘> 동인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물 밑에 달이 열릴 때》
《아무것도 안 하는 날》 《댄스, 푸른푸른》 《녹턴》 《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소설
《발원. 1: 요석 그리고 원효》 《발원. 2: 요석 그리고 원효》
《물의 연인들》 《캔들 플라워》 《 나는 춤이다 》
산문집
《물 밑에 달이 열릴 때》 《김선우의 사물들》
《내 입에 들어온 설탕 같은 키스들》 《우리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동화
《바리공주》 《 구럼비를 사랑한 별이의 노래 》
수상
2004년 제49회〈현대문학상〉
2007년 제9회〈천상병시상〉
*** 편집(참조 : daum 위키백과와 이쪽저쪽) : 윤슬 성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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