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音律庭園

지금, 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것이 / 김시천

음악듣는남자 2019. 7. 11. 18:45



 
지금, 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것이 / 김시천 
그저, 
순한 물 한 그릇이면 좋겠네 
평범한 이들의 식탁 위에 놓이는 
작은 목마름 적셔주는 
그런 물 한 그릇이면 좋겠네 
그리하여 온전하게 그대 온 몸을 돌고 돌아 
땀이 되고 눈물이 되고 사랑이 되어 
봄날 복스런 흙가슴 열고 오는 들녘의 꽃들처럼 
순한 향기로 건너와 
조용조용 말 건네는 그대 숨소리면 좋겠네 


때로는 빗물이 되어 그대 뜰로 가랑가랑 내리면서 꽃 몇 송이 피울 수 있었으면 좋겠네 사랑이라는 것이 아 아,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것이 타서 재가 되는 절망이 아니라면 좋겠네

내 가슴 불이 붙어 잠시 황홀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물 한 모금 나눠 마실 줄 아는 순하고 욕심 없는 작은 기쁨이면 좋겠네 물 한 모금 먼저 떠서 건넬 줄 아는 그런 넉넉함이면 좋겠네 그리하여 그치지 않고 결코 거역하거나 배반할 줄 모르는 샘물이 되어서 그 눈빛 하나로 세상 건널 수 있으면 좋겠네

아아,지금 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것이 들녘 여기저기 피어나는 평범한 꽃들의 목을 적시는 그저 순한 물 한 그릇이면 좋겠네




 
 
김시천 시인(1956 - 2018)

충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졸업 1987년 〈분단시대〉 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청풍에 살던 나무>, 〈지금 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것이〉 <떠나는 것이 어찌 아름답기만 하랴〉, 〈마침내 그리운 하늘에 별이 될때까지〉 <시에게 길을 물었네〉,〈늙은 어머니를 위하여〉 2018년 1월 마지막 시집 <풍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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