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것이 / 김시천
그저,
순한 물 한 그릇이면 좋겠네
평범한 이들의 식탁 위에 놓이는
작은 목마름 적셔주는
그런 물 한 그릇이면 좋겠네
그리하여 온전하게 그대 온 몸을 돌고 돌아
땀이 되고 눈물이 되고 사랑이 되어
봄날 복스런 흙가슴 열고 오는 들녘의 꽃들처럼
순한 향기로 건너와
조용조용 말 건네는 그대 숨소리면 좋겠네
때로는 빗물이 되어
그대 뜰로 가랑가랑 내리면서
꽃 몇 송이 피울 수 있었으면 좋겠네
사랑이라는 것이
아 아,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것이
타서 재가 되는 절망이 아니라면 좋겠네
내 가슴 불이 붙어 잠시 황홀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물 한 모금 나눠 마실 줄 아는
순하고 욕심 없는 작은 기쁨이면 좋겠네
물 한 모금 먼저 떠서 건넬 줄 아는
그런 넉넉함이면 좋겠네
그리하여 그치지 않고
결코 거역하거나 배반할 줄 모르는 샘물이 되어서
그 눈빛 하나로 세상 건널 수 있으면 좋겠네
아아,지금 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것이
들녘 여기저기 피어나는 평범한 꽃들의 목을 적시는
그저 순한 물 한 그릇이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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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천 시인(1956 - 2018)
충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졸업
1987년 〈분단시대〉 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청풍에 살던 나무>, 〈지금 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것이〉
<떠나는 것이 어찌 아름답기만 하랴〉, 〈마침내 그리운 하늘에 별이 될때까지〉
<시에게 길을 물었네〉,〈늙은 어머니를 위하여〉
2018년 1월 마지막 시집 <풍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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