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야 / 이정희
(박건호 작사, 오동식 작곡, 1980년)
바야야 바야야
별을 보면서 너를 생각하네
바야야 바야야
노래하면서 너를 생각하네
물새가 날으는 바다를 보면서
앞날을 얘기하던 너
길 위에 구르는 낙엽을 밟으며
지금은 떠나버린 너
바야야 바야야
나는 지금도 너를 생각하네
바야야 바야야
언제까지나 너를 생각하네
물새가 날으는 바다를 보면서
앞날을 얘기하던 너
길 위에 구르는 낙엽을 밟으며
지금은 떠나버린 너
바야야 바야야
나는 지금도 너를 생각하네
바야야 바야야
언제까지나 너를 생각하네
바야야 바야야
나는 지금도 너를 생각하네
바야야 바야야
언제까지나 너를 생각하네
원조 국민 여동생이라 불리우는 이정희는
2016년 7월 22일 YTN과의 인터뷰에서
바야야의 뜻에 대해서
"작사가 박건호 씨가 님이라는 뜻을 담아서 의성어로 만든 말이에요
그러니까 사랑하는 남자나 사랑하는 여자들
자기야, 요즘은 그렇게 많이 얘기하잖아요. 그런 뜻이죠"라고 했습니다
또한 초등학교 시절 6년 동안
KBS 어린이 합창단원이었다고 합니다
아래 내용은 2015년 8월 21일 스포츠조선의 기사 일부입니다
70년대 말 신데렐라 처럼 등장해 80년대 초 큰 인기를 누리던 그녀
깜짝 등장 처럼 은퇴도 갑작스러웠다
1979년 동양방송(TBC) 대학가요경연대회에서 '그대 생각'으로
대상을 거머쥐며 혜성처럼 등장한 이정희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대 생각' '바야야', '그대여' 등 가요사에 한 획을 그을
유명한 히트곡들을 남기며 승승장구했다
7080세대와 직후 세대는 설령 그의 이름은 잊었어도
그가 부른 곡의 멜로디를 단 한소절만 들으면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문세)의 오리지널 가수기도 하다
하지만 가수로서의 삶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연예인으로서의 삶보다 가정을 택했다
1985년 결혼 후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가며 가수로서의 그의 경력은 자연스럽게 단절됐다
본인도 아쉬움이 있었겠지만 팬들로선 당황스러운 은퇴였다
당시 심금을 울리는 천상의 목소리와 청순과 섹시미를 겸비한 외모로
큰 인기를 누리던 톱 가수의 은퇴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아래 글은 네이버블로그 Par king Lot 의 첫발자욱님과
다음카페 구름산의 휴식처의 구름산님의 글을 요약하여 편집한 내용입니다
한양대 무용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정희는
1979년 한양대 야외음악당에서 있었던
<제1회 TBC 대학가요경연대회>에 안근식 작사 작곡의 <그대 생각>으로
대상을 수상하면서 무용학도에서 인생의 항로가 바뀌는 계기가 마련된다
미팅에서 만난 남자가 이정희 목소리를 듣고 곡을 주면서
가요제 출전을 권유했다는 얘기는 전설로 전해진다
하지만, 아직은 가수 생각이 크게 없었던 이정희가
<심수봉>의 성공에 자극 받아 가수를 해보겠다고 뛰어들어 만든 첫음반에서
<그대 생각>과 함께 실렸던 <바야야>가 대박을 터트린다
데뷔 당시 172cm(42kg)이였던 이정희는 단아하면서도 청순한 이미지와
대학생으로서 발랄하고 힘이 있는 발성으로 발표하자마자 공전의 히트를 한다
1980년 한 해만 400여곳의 대학 축제에 불려다니며 노래했다고 한다
심수봉을 넘어 남자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자 신인가수였다
<바야야>를 작곡한 오동식과 연인관계라는
오해를 낳기도 했고 별 뜻 없이 입에 붙어 썼다는 후렴구 <바야야>가
무슨 뜻이냐는 방송심의 질문에 오동식이 제대로 답변을 못해
한때 방송 금지가 되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정희 전성기를 열어준 것이 1980년 10월에 발표한 2집 앨범이었다
역시 오동식 작사 작곡인 타이틀곡 <그대여>는
1981년을 이정희의 해로 만들어 주었다
이곡은 1981년 KBS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를 하고
년말에 KBS 가요대상 대상을 수상하면서
전성기였던 조용필과 대등한 인기를 누렸다
1983년 은퇴 1985년 결혼
1988년 미국으로 건너가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2015년 KBS 콘서트7080을 통해 29년만에 복귀하였다
참조1 : 첫발자욱 / 淺香朴詩의 Par king Lot / naver 블로그
참조2 : 구름산 / 구름산의 휴식처 / daum 카페
*** 편집 : 윤슬 성두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