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音律庭園

내 가슴 빈터에 네 침묵을 심는다 / 김정란

음악듣는남자 2019. 2. 13. 10:46


 
내 가슴 빈터에 네 침묵을 심는다 / 김정란
네 망설임이 먼 강물소리처럼 건네왔다 
네 참음도 
네가 겸손하게 
삶의 번잡함 쪽으로 돌아서서 모르는 체하는 그리움도 
가을 바람 불고 석양녘 천사들이 네 이마에 
가만히 올려놓고 가는 투명한 오렌지빛 
그림자도 
그 그림자를 슬프게 고개 숙이고 
뒤돌아서서 만져보는 네 쓸쓸한 뒷모습도 
밤새 
네 방 창가에 내 방 창가에 
내리는, 내리는, 차갑고 투명한 비도 
내가 내 가슴 빈터에 
네 침묵을 심는다, 한 번, 내 이름으로 
너는 늘 그렇게 내게 있다 
세계의 끝에서 서성이는 
아득히 미처 다 마치지 못한 말로 
네게 시간을 줘야 한다고 나는 
말하고 쓴다, 내 가슴 빈터에 
세계가 기웃, 들여다보고 제 갈 길로 가는 
작은, 후미진 구석 
그곳에서 기다림을 완성하려고 
지금, 여기에서, 네 망설임을, 침묵을, 거기에 심는다 
한 번 더, 네 이름으로 
언제든 온전히 말을 거두리라 
너의 이름으로, 네가 된 나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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