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엔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 이채 비오는 날엔 그토록 말이 없던 이성도 젖어 실오라기처럼 풀려진 감성이 빗물처럼 하염없이 젖어 내린다 비를 타고 내리는 소각되지 않는 외로움에 젖은 눈으로 바라본 유리창밖 나를 닮은 쓸쓸한 나뭇잎 하나 만나면 어느새 안개속 환각에 빠져 비오는 날엔 아무 준비 없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석류알처럼 알알이 박힌 추억들이 저마다 그리움이라고 외로움이라고 비오는 거리에 쏟아져 내리고 색 바랜 기억 속으로 회색빛 안개 속으로 어디쯤 숨었던 희미한 연정이 무념무상으로 흩어지면 비오는 날엔 그리움으로 외로움으로 어디론가 혼자 떠나고 싶다 어디로 가야할지 나도 비도 알지 못하더라도